진짜 어른

추억 2018. 6. 15. 23:29

22살의 나는 하염 없이 울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터트렸다. 20살이 넘은 이후로 가장 서럽고 슬프게 울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8살짜리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기도 했다. 군대를 앞두고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덜컥 이별을 말했으니까. 바보같이 나는 직접 이별을 말하고 돌아서서 절망했다. 나에게 스스로 괜찮다고, 이게 맞는 거라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지만 그 슬픔과 절망감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갔는지 얼마나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 우리가 좋아했던 Nouvelle Vague의 음악을 하염없이 들으면서... 




나는 그렇게 걷다가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길에 도착했다. 길은 정말로 어두웠고 사람이라곤 지나다닐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프고 서럽고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내가 고개를 들었을때는 어떤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다.

그는 정말로 이상한 말과 행동을 했다. 그 남자는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학생 미안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요. 이거 가지고 맛있는거 사먹어요. 다 괜찮아 질 거에요....." 그리고 그 사람은 나한테 2만원을 쥐어 주고는 터벅터벅 걸어서 사라졌다. 






그 남자는 30대 중, 후반? 정도의 젊은 나이 같았다. 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은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했다. 아마도 늦은시간까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던 회사원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울고 있는 22살의 어린나를 발견했던거 같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 앞에서 쭈뼛거리며 서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내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던 것 같다. 저 이상한 말을 하려고 말이다.

"학생 미안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요. 이거 가지고 맛있는거 사먹어요. 다 괜찮아 질 거에요....." 이 말은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다. 정리해보면 그 사람은, 이름도 모르는 울고있는 학생에게 2만원을 건내는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 사과를 했다. 더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사과를 말이다.

나는 사실 아직도 그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힘든 야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름도 모르는 처음보는 어린 학생이 울고 있었고,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어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질문하나 없이 2만원을 건내주면서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에서야 알게되었지만 말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까지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이상하며, 동시에 어려운 일인지 잘 몰랐다. 29세가 된 지금. 그때보다 더 절실히 그 남자의 어른스러움이 느껴진다. 아마 내가 그 남자의 나이가 되면 더 깊이 느껴질 것 같다.

진짜 어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를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직접 만났다. 이름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는 사람을 말이다. 그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어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자신과 무관해도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저에게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위로와 사과를 건내 주신 것,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거에요.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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