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추억 2018. 7. 4. 22:40

나는 당시를 기억한다.


20살의 나는 반쯤은 미쳐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너무 행복했고 재미있었다.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1년 재수를 했지만, 술도 잘 못하고 돈도 별로 없었지만,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친구들과 함께 모여 가지는 술자리는 항상 즐거움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재밌게 해주는 존재였고 계속해서 웃는 아주 시끄러운 사람들이었다. 항상 조용히 좀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말이다.



나는 당시를 기억한다.


어느날 내 친한 친구 A는 이렇게 말했다. "야!! 좀 있다가 내 친구 올거야. 여자애인데, 엄청 예쁘고 착해. 그러니까 꼬실 생각일랑 말고 재밌게 놀자!!" 나는 표정을 찡그렸다. 왜냐고? 지금 우리가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누가 오면 자기소개 하고 또 신경써야 하고 복잡해 지는 것이 싫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A의 친구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와 합석했다. 내 기분은 어땟냐고? 위에서 말했자나. 여기에 욕을 쓸수는 없으니까.. "What the........" 정도로만 하자.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건 더 재밌게 노는 것과 더 웃기는 것 뿐이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딱 붙는 청바지에 단화, 무늬없는 티셔츠와 겉옷. 꽤 큰 키와 큰 눈, 환한 미소. 흔히들 이야기하는 '인기 많을 상' 나는 이런생각을 했다. "저런 애는 성격이 별로 안좋겠지?" 당시만해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으니까. 

가볍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는 빠르게 이름정도만 소개했다. 그리곤 그 이후에는 조금은 무례하게? 장난을 쳤다. 나한테 중요한건 일단 모두를 웃기는 거였으니까. 게다가 썩 맘에 들지도 않았으니까. 분위기가 경직되는게 느껴졌기도 했거니와 예뻐서 싫었으니까. 그냥 그 뿐.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은 이 자리가 신기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웃을 때마다 정말 환하게 그리고 밝게 함께 웃었다. 아마도 이 자리가 정말로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 보였다. 종종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분위기를 주도하던 고삐풀린 망아지 같은 2명, 나와 A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A는 평소에는 꽤나 진중한 친구였으니까. 나랑 붙어서 하는 이상하고 텐션 높은 그 상황들을 볼 일이 없었겠지. 이따금씩 내가 하는 무례한 장난에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지만, 금세 다시 웃곤 했었다.



재밌게도 내가 기억하는 '당시와 당신' 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화  (0) 2018.06.27
오늘...  (0) 2018.06.26
진짜 어른  (0) 2018.06.15
음악  (0) 2018.06.10